2022. 3. 25. 대전 예술의전당에 해적을 보러 다녀왔다. 발레를 조금씩 배워오긴 했지만 발레공연 티켓을 직접 구매해서 다녀온 건 처음이었다! 왜인지 문화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작품을 보기 전에 <해적>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진 못해서 마린스키 발레단의 <해적>을 2회 시청하고 갔다! 발레 공연은 대사 없이 마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등장 인물과 대략적인 스토리를 알아가면 극을 이해하기 좋다.
- 티켓이 무료주차권으로 출차 시 정산소에서 제시하면 된다.
인터파크 티켓에서 2022. 1. 26. 티켓오프일에 예매했다.
22. 3. 25. 해적 대전 캐스팅
- 메도라-박예은
- 콘라드-하지석
- 알리-김태석
- 비르반토-김명규A
- 궐나라-곽화경
- 왕자-허서명
- 메도라 친구-김경림, 심소연, 이은서, 조연재
메도라 역의 박예은 리나는 테크닉적으로도 아름답지만 감정 연기가 뛰어났다. 대전 예술의전당 해적 공연에서는 오케스트라 대신 MR이 대체해서 조금 아쉬웠다. 그렇지만 의상이 정말 고급스럽고 화려하고 예쁘다. 정말 눈이 호강했던 공연! 꼭 안경을 지참해서 자세히 보아야 한다.
Le Corsaire 해적, 그들은 악당인가 영웅인가?
보통 해적은 다른 배를 공격해 화물을 약탈하는 바다 강도로 해상 무역이 활발하던 시기엔 가장 악명 높은 집단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해적들이 바다 위를 모험하며 부자들을 습격하는 용감한 다크 히어로 정도로 생각하곤 한다.
<원피스>나 <캐러비안의 해적>처럼 발레에도 해적의 모험담을 다룬 작품이 있다. 여기서 해적들은 악덕 부호의 노예가 될 뻔한 여인들을 구출하는 영웅으로 등장한다.
발레 <해적>은 터키의 점령지였던 그리스의 이오니아 해안가를 배경으로 하며, 작품의 대본은 영국의 시인인 고든 바이런이 1814년에 발표한 시극 <<해적>>을 모티브로 한다. 하지만 여주인공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문학 작품의 결말과는 달리, 발레 작품에서는 아름다운 춤과 함께 일종의 소동극이 벌어지는 희극으로 재탄생했다.
3막은 파샤의 궁전에서 시작한다. 이곳은 꽃들과 분수가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지만, 나라를 잃고 팔려온 소녀들이 있는 하렘이기도 하다.궐나라의 춤을 즐기고 있던 파샤는 라엔뎀이 데려온 메도라를 보자 기뻐하고, 궐나라와 메도라 두 여인은 슬픔을 달래며 함께 춤을 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순례자로 변장한 콘라드 무리가 메도라를 구출하러 온다. 파샤와의 싸움에서 당당히 이긴 콘라드는 메도라와 궐나라를 구하고 모험을 찾아 바다로 질주한다.
발레 <해적>은 두 번의 구출 작전을 끝으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이국적인 그리스와 해적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는 <해적>이 현재까지 인기 있는 레퍼토리로 이어진 이유로 갈라나 콩쿠르에 빠지지 않는다.
자주 공연되는 몇 가지 춤은 오달리스크의 빠드트로와, 상인과 궐나라의 빠드두, 콘라드-메도라-알리의 빠드트로와, 주인공들의 개성 넘치는 솔로까지 정말 많은 춤들이 발췌돼 널리 공연되고 있다. 그 결과 전막 공연 기회가 흔치않음에도 작품 안의 일부 춤이 굉장히 유명하다.
<해적> 탄생과 개작의 역사는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837년 프랑스 출신의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프랑수와 알베르가 붓샤의 음악으로 런던 왕립극장에서 초연한 동명의 작품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지만, <해적>이 영국에서 초연됐다는 것은 이 작품이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파 시인인 바이런의 시극을 원전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가진다.
1856년 조제프 마질리에르가 아돌프 아당과 체사레 푸니의 음악을 사용해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공연한 것이 오늘날 <해적>의 원작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2년 후, 마린스키 발레단이 쥘 페로가 재안무한 <해적>을 공연하게 되면서 비로소 러시아 <해적>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때 남자 주인공 역에는 마리우스 프티파가 출연했다고 한다. 프티파는 훗날 러시아 발레의 황금기를 연 주인공이다.페로를 도와 리허설을 하면서 몇 가지 춤을 수정하기도 했던 그는 1863년,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해적>을 초연하기에 이른다. 초연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이 작품을 개작하며 완성도를 높여간다.
이 과정에서 아당의 음악에서부터 푸니, 들리브, 리카르도 드리고, 듀크 피터에 이르기까지 열 명이 넘는 작곡가들의 음악이 군데 군데 삽입된다. 1900년대에도 여러 번의 개작 과정을 거치면서 알리 캐릭터와 새로운 장면이 추가되었다.
<해적>의 다양한 버전이 공존하는 이유는 이미 여러 번의 개작이 있었고 현재까지도 예술 감독별로 다양한 연출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개정에 개정을 거듭한 <해적>의 역사는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1995년 국립발레단이 무대에 올린 <해적> 국내 초연은 당시 예술 감독이었던 김혜식이 재안무했다. 2020년 국립발레단의 <해적>은 솔리스트 송정빈이 재안무를 맡아 주요 캐릭터의 이름과 해적들의 모험이라는 설정은 유지한 채 스토리를 전면 각색한 것이 특징이다.
개작 과정에서 매우 다양한 작곡가의 음악이 혼합된 결과, 음악으로나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는 통일감이 떨어진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하지만 러시아 고전 발레의 아버지인 프티파의 손길을 거치며 <해적>에는 고난도의 기교가 대거 삽입되고, 화려한 군무가 추가되며 결과적으로 스펙터클한 작품이 됐다.
여러 춤 중에서도 알리의 솔로가 대표적이다. 콘라드의 노예인 알리는 줄거리상 비중이 적은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1분 남짓한 솔로에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테크닉의 향연인 이 춤에서 무용수는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낸다. 이러한 이유로 <해적>은 갈라나 콩쿠르에 최적화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노예로서 여인을 사고파는 <해적>의 시대적 배경은 잔혹하기 그지없다. 터키의 지배를 받는 그리스는 제국주의 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의 창작열을 부추겼을 것이다. 비록 구시대 문화의 재현이 오늘날 비판의 대상이 될지라도, 이러한 예술은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초월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해적>에 등장하는 해적들을 노예라는 식민지 시대의 잔혹성을 조롱하는 영웅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신선한 무대 이미지와 무용수들의 개성 넘치는 춤은 식민지라는 역사적 배경을 넘어서기도 한다. 공주나 요정이 아닌 용감한 해적들의 이야기는 분명 클래식 발레의 스펙트럼을 넓혀주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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